저질체력 세심천 코스 실측 5시간 (이성계 기도터·우이암 조망)
· 실측 거리 — 약 5km 안팎 (GPS 4.7km · 체감은 10km ㅋㅋ)
· 실측 소요 — 약 5시간 (올라가는 데 3시간 30분, 내려오는 데 1시간 30분)
· 최고 고도 — 약 490m대 (우이암 일대)
· 난이도 — 저질체력 기준 ★★★★☆ (깔딱 많음. 솔직히 백운대보다 힘들었어요 ㅋㅋ)
· 오늘의 한 줄 — "우이암은 못 올라가요. 멀리서 바라보는 바위예요. 대신 원통사가 진짜였어요."

밤에 북한산 자락을 멀리 바라보면 산 중턱에 불빛이 두 개 떠 있어요. 저희끼리 늘 "저 두 점이 뭘까" 했는데, 하나는 도선사고 다른 하나가 오늘 다녀온 원통사인 것 같더라고요. 차로는 갈 수 없는 자리에 불을 켜 두고 있는 절. 그게 늘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목표는 우이암으로 잡고, 가는 길에 원통사를 꼭 들르기로 했어요. 참, 오늘은 아내가 시간이 안 돼 저 혼자 다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천천히, 더 오래 걸었어요 — 결국 왕복 5시간(올라 3시간 30분, 내려 1시간 30분). 솔직히 저는 백운대보다 힘들었어요. ㅋㅋ
결론부터 말하면 우이암은 '오르는' 봉우리가 아니라 '바라보는' 봉우리였고(왜 그런지는 아래에서요),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원통사였습니다.
들머리는 늘 그렇듯 세심천이에요. EP.02·03을 보신 분들껜 익숙한 그 약수터죠. 꽃동네도서관에서 15분쯤 걸어가면 생태육교가 나와요. 우이동과 방학동을 가르는 다리인데, 이 육교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초입은 동네 뒷산 느낌이라 부담 없어요.

한참 오르면 EP.03에서 저희가 '깃발봉우리'라고 이름 붙였던 그 봉우리가 나와요(해병대 깃발이 꽂혀 있던 이름 없는 봉우리요). 여길 지나면 길이 갈립니다. 왼쪽은 우이암, 오른쪽은 방학동(무수골) 방향. 오늘은 우이암이 목표라 망설임 없이 왼쪽으로 틀었어요.

능선에 올라서니 도봉의 화강암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가운데 우뚝한 삼형제가 선인봉·만장봉·자운봉이에요. 도봉산 하면 떠오르는 그 실루엣이죠.

도봉 주능선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오늘의 무대가 한눈에 들어와요 — 우이암, 그 옆 우이암 조망 바위, 그리고 숲에 숨은 원통사까지요. (맨 왼쪽 큰 바위는 현재 통행이 통제되는 구간이에요.)


한참을 더 올라 우이암을 코앞에 둔 높은 자리에 원통사(圓通寺)가 있어요. 도선사가 사람 많고 조금은 세속적인 느낌이라면, 원통사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차가 들어오는 길이 아예 없어서 오직 걸어서만 닿을 수 있고, 그래서인지 수행하는 절 특유의 조용함과 오래된 세월의 결이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현장 안내문은 이 자리를 "좌우로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 최고 길지"라고 소개하더라고요. 직접 서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무학대사를 비롯해 만공·동산·춘성 같은 큰스님들이 거쳐 간 관음 기도 도량이고, 조선 영조 때 영의정 조현명·서명균 같은 이들이 나랏일을 논하며 심신을 닦던 명소이기도 했대요.
경내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게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 현장 표지엔 "태조 이성계 백일기도한 석굴전 → 나한전"이라고 적혀 있어요. 조선을 열기 전, 이성계가 이 자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다는 절의 전승이죠. 그 석굴은 지금도 나한전 굴법당으로 쓰이고 있어요. 다른 하나는 상공암(相公岩) — 약사전 아래 거북바위에,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정승(상공)이 되어 옥황상제를 뵙는 꿈을 꾸었다 해서 새겼다는 글씨예요.




법당 지붕 너머로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요. 밤이면 이 자리에서 켠 불빛 하나가, 동네에서 저희가 올려다보던 그점이었겠죠. 낮인데도 멀리 롯데타워까지 보일 만큼 시야가 트여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밤이 되면 여기 스님들은 저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세속을 등지고 수행하는 자리에서 매일 밤 가장 번쩍이는 도시의 불빛을 마주한다는 게, 묘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경내엔 샘물도 하나 있어요. 차도 안 들어오는 산속 절이라 그런지 이 한 모금이 유난히 달더라고요. (솔직히 이날 물이 모자랐던 저에겐 거의 생명수였습니다. 자세한 물 이야기는 아래 준비물에서요.)


원통사를 나와 조금 더 오르면 우이암(牛耳巖, 542m)이 나와요. 소(牛)의 귀(耳)를 닮았다고 우이암인데, 본래 이름은 부처께 기도하는 형상이라 해서 관음봉, 사모관대를 닮았다 해서 사모봉으로도 불렸대요. 우이령에서 보면 소 귀, 보문능선에서 보면 성모마리아상 같다고도 하고요.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 등산객은 전망 지점·전망데크에서 바라보는 것이 정답이에요. 그 자리에서 선인봉(708m)·만장봉(718m)·자운봉(739.5m)에 오봉까지 도봉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우이암을 바라보던 전망 바위엔 고양이 두 마리가 그늘에 늘어져 있었어요. 사람이 다가가도 꿈쩍 않는 걸 보니 이 바위가 제집인 모양이에요. 덕분에 잠시 같이 앉아 우이암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발아래로는 서울이 아득하게 펼쳐져요. 그런데 조망을 즐기던 중, 도심 한복판에서 시커먼 연기 기둥이 치솟는 게 보였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방학동 쪽 주택에서 난 불이었더라고요. 평소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동네를 오늘은 거꾸로 산 위에서 내려다보던 참이라, 그 광경이 한참 마음에 남았어요. 부디 인명 피해가 없었기를 바랍니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우이암 0.5km, 자운봉 2.3km, 도봉탐방지원센터 3.0km더라고요. 욕심내면 자운봉까지도 갈 수 있지만, 저질체력은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조망 충분히 즐기고, 하산은 우이동 쪽으로 길을 잡았어요.

내려오는 길엔 큰 바위 두 개 사이로 난 좁은 나무계단을 지났어요. 바위가 갈라진 틈으로 길을 낸 게 신기해서 한 컷 남겼습니다.

한참 내려오면 우이동 먹자골목으로 빠져나와요. 산속의 적막에서 갑자기 식당 간판과 사람 소리로 바뀌는 그 경계가, 늘 산행의 끝을 실감하게 합니다.

우이동에서 바로 마쳐도 됐지만, 출발지였던 세심천까지 걸어 한 바퀴를 채우기로 했어요. 아침에 건넜던 그 생태육교 아래에 가니 '왕실묘역길' 시작점이 있더라고요. 북한산둘레길 20구간이에요.

이 길로 들어서니 연산군묘 0.7km 이정표가 반겨요. 사실 이 왕실묘역길이 EP.02·03에서 저희가 걸었던 방학동 둘레길(연산군묘·방학동 은행나무 그 길)이에요. 우이암까지 산을 크게 한 바퀴 돌아, 결국 익숙한 동네 길로 돌아온 셈이죠.

그늘진 데크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깔딱으로 혹사당한 다리가 그제야 좀 풀리더라고요. 참고로 바로 옆 21구간이 어제 다녀온 우이령길(EP.07)이라, 결국 도봉의 길들이 이 자락에서 다 만나요.
그리고 오늘도,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쓰레기는 주워 왔어요. 새 블로그로 이사 와서도 이건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죠. 그렇게 다시 세심천 — 한 바퀴, 무사히 완성했습니다.


① 우이동 먹자골목으로 진입하면 오른쪽에 가족캠핑장이 보여요.
② 그 캠핑장을 지나자마자, 다리를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그게 우이암 가는 길이에요.
③ 참고로 다리 쪽으로 직진해 먹자골목 끝까지 가면, 그건 우이령길(저희가 EP.07에서 다녀온 그 길) 들머리예요. 헷갈리지 마세요.


· 총 소요 — 약 5시간 (올라가는 데 3시간 30분 + 내려오는 데 1시간 30분)
· 핵심 — 5km도 안 되는데 5시간. 이 코스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이 말해줘요. 짧다고 얕봤다간 큰코다칩니다.
· 최고 고도 — 약 490m대 (우이암 일대) / 들머리 약 50m → 표고차 약 440m
· 체감 난이도 — 솔직히 백운대(EP.06)보다 힘들었어요. 깔딱이 많아요.
· 그런데 반전 — 오늘 만난 등산객 중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제일 많았어요. 그분들이 이 길을 척척 다니시는 걸 보면 난이도 자체가 살인적인 건 아니에요. (저질체력이 유난인 거죠 ㅋㅋ)
· 죽을 뻔한 구간 — 콕 집을 수가 없어요. 우이암까지 오르는 길이 그냥 다 깔딱이었어요.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올라가는 내내 죽을 뻔했습니다 ㅋㅋ
· 참고 — '표준' 우이암 코스(도봉탐방지원센터 → 보문능선 → 천진사 → 우이암)는 편도 2.5km·1시간 20~30분이에요. 저는 세심천에서 출발해 절까지 구경하느라 훨씬 더 걸렸고요.
· 세심천(저희 코스) — 쌍문동·방학동 주민용. 동네에서 바로 붙기 좋아요.
· 도봉탐방지원센터(메인) — 저는 안 가봤지만, 찾아보니 우이암 표준 코스래요(도봉사 → 보문능선 → 천진사 → 우이암, 편도 약 2.5km). 완만해서 어르신·초보도 무난하고, 봄엔 진달래·철쭉이 좋다고 합니다.
· 우이동 먹자골목(독자 추천) — 북한산우이역 종점이라 접근이 쉽고 하산 후 먹거리도 편해요. 진입로 안내는 위 '외지에서 오신다면' 박스 참고. (단, 오르는 길엔 화장실이 없어요)
· 화장실 — 세심천 코스 기준 2곳: 세심천에 하나, 원통사 인근에 하나예요(사진 IMG_1019). 우이동(먹자골목)으로 오르면 도중에 화장실이 없어 원통사 인근이 사실상 유일하니, 출발 전에 미리 들르세요.
· 주차 — 솔직히 우이동엔 아직 변변한 공영주차장이 없어요. (강북구가 '우이동 교통광장 공영주차장'을 2027년 준공 목표로 짓는 중이에요.) 우이역 1번출구 옆에 주차장이 있긴 한데 공영인지 사설인지는 확실치 않아요. 주말 탐방철엔 주차난이 심하니, 우이동 코스는 차보다 지하철(우이신설선)을 강력 추천해요.
· 대중교통 —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 / 1호선·7호선 도봉산역.
· 준비물 — 물을 넉넉히! 저는 커피 하나에 물 500ml만 들고 갔다가, 더운 날 힘든 구간에서 모자랐어요. 매점이 없으니 넉넉히 챙기시고, 부족하면 원통사 샘물에서 받아가세요. 그 외 미끄럼 적은 등산화, 여름엔 모자·소금사탕. 우이암은 조망용이라 무리한 암릉 장비는 필요 없어요.
→ 유튜브 '둘이 느릿느릿 걷기'에서 보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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