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트레킹

여기가 서울 맞아? 외국인 가득한 북한산 백운대

저부부 2026. 6. 8. 17:23
둘이 느릿느릿 걷기 · EP.04

여기가 서울 맞아? 외국인 가득한 북한산 백운대

정상은 90도, 그리고 담배꽁초 — 도선사 코스로 오른 백운대 836m
강북구 · 늦은 오후 산행

둘이 느릿느릿 걷기
등산 고수의 정복기가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도 갈 수 있을까?"가 궁금한 분들을 위한 평범 이하 체력 부부의 솔직한 기록입니다. 어디서 숨이 넘어갔고, 어디서 쉬었는지 가감 없이, 둘이 느릿느릿 걸어요.

EP.01 마니산에서 시작해서, 방학동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체력을 길렀던 이유가 사실은 딱 이 산 하나 때문이었어요. 북한산. 시리즈를 열면서 "언젠가는 북한산·도봉산"이라고 적어둔 그 '언젠가'가 드디어 왔습니다. 그것도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836m)로요.

출발 — 오후 3시, 도선사 옆 주차장

보통은 새벽이나 아침에 산을 찾는데, 이번엔 좀 게으르게 오후 3시쯤 느지막이 출발했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주차가 진짜 빡셌습니다. 도선사 바로 옆 주차장인데 자리가 없어서 한 바퀴 빙 돌고 나서야 겨우 한 칸 찾았어요. 주말 오후라면 만차를 각오하시는 게 좋고, 마음 편하려면 대중교통(북한산우이역·수유역 버스)도 방법이에요. 참고로 도선사 입구까지는 택시도 올라와요. 주차가 빡센 걸 다들 아는지, 택시를 미리 호출해 놓고 기다리는 분들도 꽤 많더라고요. 차 없이 오신다면 택시가 의외로 편한 선택이에요. 그런데 막상 다녀보니 늦은 오후에 출발한 게 신의 한 수였어요. 한낮 땡볕을 피할 수 있고, 사람도 조금 빠지고, 내려올 즈음엔 빛이 부드러워지거든요.

이 주차장이 있는 곳이 바로 해발 300m 고지의 북한산탐방지원센터예요. 즉 차로 300m 높이까지 올라온 셈이고, 본격적인 산행은 이 센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루재까지 — 흙길과 돌길

하루재까지는 흙길은 거의 없고 크고 작은 돌이 깔린 돌길이에요. 안내문상으론 "무난한" 길이라는데… 우리 부부 기준으론 벌써부터 숨이 차오르더라고요. 그래도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한 가지 놀라는 게, 등산객 열에 네 명쯤은 외국인이에요. 오르내리며 스쳐 지나는 사이 러시아어, 동남아시아 어디쯤의 언어(아마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말일까요?), 그리고 영어는 기본으로 들려요.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진짜 산을 만날 수 있으니,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것도 그럴 만하다 싶었어요.

하루재가 첫 고비예요. 여기서 잠깐 쉬는데, 눈앞에 거대한 바위 한 덩어리가 들어옵니다.

바로 인수봉이에요. 암벽등반 하시는 분들에겐 성지 같은 봉우리라는데,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더라고요.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저 까마득한 바위에 매달려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보여요. 보고만 있어도 엉덩이가 다 간지럽더라고요ㅋㅋㅋ

구조대와 인수암

하루재에서 200m쯤 더 가면 특수산악구조대가 있어요. 산에서 이런 건물 보면 괜히 든든하더라고요. 참고로 화장실은 처음 탐방지원센터, 이 산악구조대 근처, 그리고 위쪽 대피소에 있어서 화장실 걱정은 거의 안 해도 될 것 같았어요.

바로 옆에 인수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 돌기둥 사이로 인수봉을 배경에 두고 선 모습이 오늘 산행에서 손꼽히게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그리고 이 구조대 앞에서부터가… 진짜 깔딱고개의 시작입니다.

오늘 가장 마음에 걸린 건, 사람이 남긴 흔적이었어요

처음엔 단풍잎 한 장에 하얀 게 붙어 있길래 담배꽁초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파스 같은 거더라고요. 얼굴에 붙이는 쿨링 패치인지 파스인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누군가 그걸 굳이 나뭇잎에 딱 붙여놓은 거였어요. 왜 하필 잎에… 솔직히 좀 소름이 돋았어요.

그리고 진짜 담배꽁초도 바위 틈, 길가 곳곳에 한두 개가 아니더라고요. 국립공원이고, 다들 좋아서 오르는 산인데 말이죠. 담배꽁초가 있다는 건 누군가 산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얘기잖아요. 솔직히 '이거 범죄 아닌가' 싶었어요. 찾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 국립공원은 전 지역이 금연구역이라, 흡연하다 적발되면 과태료가 1차 60만 원, 2차 100만 원, 3차 200만 원이에요. 담뱃불은 산불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잔소리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눈에 자꾸 밟혀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도 슬슬 줍기 시작했어요. (그 이야기는 글 맨 끝에 다시 나와요.)

백운대피소까지 — 끝없는 계단

구조대를 지나면 계단이 끝없이 이어져요. 돌계단, 철계단, 또 돌계단… 다리가 슬슬 후들거립니다.

정상까지 500m를 남겨둔 백운대피소에서 잠깐 재정비. 여기서부터가 경사가 제일 가파르거든요.

위문(백운봉암문)을 지나서

위문(동남아시아 등산객분들)

드디어 위문에 도착했어요. 본래 이름은 백운봉암문이고, '위문'은 일제강점기부터 불린 이름이래요. 문루 없이 성벽에 뚫린 돌문 하나인데,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이 참 묘했어요. 마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랄까요ㅋㅋㅋ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느낌의 정체가 있었어요. 이 문 뒤쪽은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고양시거든요. 도선사 쪽은 서울 강북구, 문 너머는 고양시 — 문 하나 넘었을 뿐인데 행정구역이 바뀌는 거예요. "다른 도시로 넘어간다"는 게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였던 거죠. 풍경도 그래요. 안쪽은 숲에 둘러싸인 길이었는데, 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탁 트인 바위 능선과 하늘이 펼쳐져요.

안내판을 보니 백운봉암문은 백운대(836.5m)와 만경대(799.5m) 사이, 북한산성 성문들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암문(비상 통로용 작은 성문)이에요. 1711년 숙종 때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만들었고, 유사시 무기·물자·부상병을 옮기던 비상문이었다고 해요. 작은 돌문 하나에 이런 사연이 담겨 있었네요.

문을 지나니 성벽 너머로 백운대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해요. 거의 다 왔다는 신호죠.

정상 직전 — 이 코스의 진짜 하이라이트

솔직히 말하면, 북한산 백운대 코스의 진짜 매력은 여기 다 몰려 있어요. 위문(백운봉암문)을 지나는 순간부터가 진짜거든요. 그전까지의 돌길과 계단이 '준비운동'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거대한 통바위 한 덩어리를 그대로 타고 오르는 구간이에요.

경사가 확 가팔라지는데, 솔직히 체감상 거의 90도예요ㅋㅋㅋ 두 발로는 도저히 안 되고, 너른 화강암 슬랩에 박아둔 철난간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네 발로 기다시피 올라야 해요. 난간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중간에 아래를 한 번 내려다봤다가 아찔해서 다시 위만 보고 올라갔어요. "생각보다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오면서도, 동시에 "아, 이래서 다들 북한산 북한산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게다가 오후 늦은 시간이라 구름이 낮게 깔리고 빛이 묵직했어요. 회색 구름 아래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통째로 드러나니, 서울 한복판에 이런 풍경이 있나 싶을 만큼 웅장하더라고요. 무섭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고 — 이 구간만큼은 사진보다 직접 두 발(아니 네 발)로 올라봐야 제맛이에요.

백운대 836m, 북한산 최고봉

드디어 백운대(836m), 북한산 최고봉에 섰어요. 발 아래로 서울이 통째로 펼쳐지는데, 올라오느라 후들거리던 다리가 한순간 잊히더라고요.

사실 정상석 사진도 분명히 찍었는데… 저장이 안 됐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정상에 섰다는 증거가 풍경 사진뿐이라 좀 아쉽지만, 덕분에 "정상석 다시 찍으러 가야 한다"는 핑계가 하나 생겼어요. 태극기와 정상석은 다음 편 숙제로 남겨둘게요. 😅

내려오는 길

내려오다가 바위 틈에 핀 노란 꽃을 봤어요. 흙 한 줌 없어 보이는 그 척박한 틈에서 기어이 꽃을 피운 게, 괜히 한참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천천히, 오후 7시쯤 내려왔어요. 오후에 출발해서 해 질 무렵 하산한, 짧지만 알찬 산행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 앞에서 내려가던 다섯 살쯤 된 꼬마가 있었는데요. 그 짧은 다리로 바위를 척척 짚으며 내려가는 하산 실력에, 어른인 우리가 더 놀랐어요. 저 나이에 이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온다는 거잖아요. 괜히 응원을 하게 되더라고요ㅎㅎ

다녀와서 가장 신기했던 건 신발이었어요. 보통 등산하고 나면 흙이나 모래알갱이가 신발 안에 한가득 들어오기 마련인데, 북한산은 워낙 돌산이라 그런지 모래 한 알 안 들어왔더라고요. 흙길 산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건, 분명 '등산'을 했는데 다리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에 알이 배겼다는 거예요ㅋㅋㅋ 팔이며 어깨며 안 쑤시는 데가 없어요. 아무래도 정상 직전 그 구간에서 난간을 붙잡고 네 발로 기어오른 탓이겠죠. 하체 운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신 운동이었어요.

오늘의 작은 수확

📷 [사진 16] 오늘 주운 쓰레기 — 작은 봉투 하나 (변환본)

거창한 거 아니에요. 그냥 눈에 보이는 것 몇 개 주운, 작은 봉투 하나예요. 그래도 우리가 지나온 길만큼은 조금 더 깨끗해졌으면 했어요.

판단도, 잔소리도 안 할게요. 다만 우린 다음에도 봉투 하나쯤 챙겨 가려고요.

🥾 오늘 코스 요약

코스 · 북한산탐방지원센터(해발 300m·주차장) → 하루재 → 특수산악구조대·인수암 → 백운대피소 → 위문(백운봉암문) → 백운대 정상
정상 · 백운대 836m (북한산 최고봉)
거리 · 탐방지원센터 기준 편도 약 2.1km
시간 · 오후 3시 출발 ~ 7시 하산 (쉼·쓰레기 줍기 포함, 부부 기준)
난이도 · 생각보다 힘듦 — 위문 이후 정상부는 네 발로 올라야 할 만큼 가파름
주차 · 도선사 옆 주차장, 주말 오후 만차 주의 (입구까지 택시 진입 가능)
화장실 · 탐방지원센터·산악구조대 근처·대피소에 있어 걱정 안 해도 됨

처음 시리즈를 시작할 때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산, 그 최고봉에 둘이 느릿느릿 올라섰어요. 다음 목표는… 도봉산이 될까요? 둘이 느릿느릿, 다음 길에서 또 만나요. 🥾

오늘도 새로운 길 위에서 · 둘이 느릿느릿 걷기